
순창 강천사에 붉은 감이 매달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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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 먼저 태어난다고 더 아름답지는 않 듯. 단풍도 마찬가지. 북에서부터 내려오지만 반갑다고 그 색과 모양이 더 고운 것은 아니다. ‘기온이 비정상’이고 계절을 순식간에 바꾸는 ‘우주의 기운’ 탓에, 가을이 서둘러 도망치고 있다. 오랜만에 돌아온 가을을 쉽사리 보낼 수 없는 우리 마음이야 한결같다. 뛰다시피 떠나는 가을의 뒷모습을 추격했다. 발빠른 걸음에 놀랐지만 가까스로 뒷덜미를 챈 곳은 바로 전북 순창 강천산이다. 늙은 햇볕에 깜빡 속아 그곳에 잠시 머물다 내게 체포됐다.

◇가을날의 붉은 산책
겨우 잡았다. 내려가는 길 길가에 온통 빨갛고 노란 색천지라 가을이 스쳐 지났으면 어쩌나 했다. 하지만 전주 앞목에서 순창으로 꺾인 후에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단풍 명소, 올해는 놓쳤다 상심하긴 이르다. 아직 강천산이 남았다. 숨은 명품 단풍으로 소문났다. 새빨간 단풍이 폭포와 어우러져 이리저리 산을 두른다. 그리 높지도 않다는 것이 장점이다. 슬슬 걷듯 비단 단풍 속을 누비다 오면 된다.

아는 이들은 모두 으뜸이라는 순창 강천산 단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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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11월 하순까지) 가장 붉은 고장이 순창 쯤이다. 전속력으로 남하한 단풍이 호남의 ‘소금강’ 강천산 꼭대기에 걸려있다. 전북 순창(淳昌)은 붉은 색으로 유명하다. 하나는 고추장이고 또다른 하나는 단풍이다.

섬진강과 강천산을 품은 순창은 산수가 좋은 고을로 알려졌다. 특히 강천산은 단풍이 아름답다. 비록 인근 내장산의 명성에 가렸지만, 사실 그래서 더 좋다. 발디딜 틈 없는 내장산에 비해 그나마 강천산은 낫다.

순창 강천산은 강천사 계곡을 따라 단풍 트레킹을 즐기기에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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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흐렸지만 약한 오후의 가을볕도 얇은 단풍잎을 투과하긴 충분했다. 딱 두시간만 할애하면 가을을 보내는데 아쉬움이 없다. 등반코스도 있지만 구장군 폭포까지 다녀오는 트레킹 코스가 딱이다. 이 산의 단풍은 수종이 다양해 색이 좋다. 잎 크기가 작고 고운 애기단풍도 있다.

강천산의 단풍 트레킹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지닌 한편의 드라마 같다. 파격적인 도입부가 있다. 초입부터 단풍터널이 이어진다. 그리고 주인공 중 하나인 병풍폭포가 초반부터 등장한다. 화려한 캐스팅이다. 병풍폭포는 원래 건폭(乾瀑)이다. 평소에는 벼랑이다가 비가 오면 폭포가 된다. 지금은 물을 끌어올려 언제라도 웅장한 폭포수를 볼 수 있다. 굳이 구분을 짓자면 인공폭포라고도 할 수 있지만 느낌은 많이 다르다. 콘크리트 가짜 벼랑도 아니고 원래 폭포수가 흐르던 곳이니 자연스럽다.
아름다운 계곡을 옆에 낀 길을 걷다보면 갑자기 하늘높이 솟은 메타세쿼이어 길이 나타난다. 아름드리 나무가 만든 초록 그늘에서 네온같은 단풍에 지친 눈을 쉬어갈 수 있다.

강천산 단풍트레킹은 두 시간 정도 유유자적 걸어가며 즐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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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누비듯 이어지는 계곡을 다리로 건너가며 단풍잔치를 감상할 수 있다. 길이 끝나갈 즈음 나무데크 계단을 따라 오르면 등산로의 일부인 흔들다리가 나온다. 이곳에선 단풍 물든 길의 정수리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발걸음도 눈도 바빠진다.

클라이막스는 바로 구장군 폭포다. 높이가 무려 120m에 이르는 절벽으로부터 세 줄기의 굵은 폭포수가 쏟아진다. 단풍과 어우러진 강천산의 수려한 자연을 감상하고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반나절이다.

단풍의 색도, 높이도 모두 아찔한 강천산 흔들다리.

강천사 계곡 단풍 트레킹에선 구장군 폭포가 절정이다.

수종이 다양해 색도 아름다운 순창 강천산 단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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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침도는 밥상의 단풍
순창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사실 강천산도 섬진강도 아니다. 고추장이다. 차줌마(차승원)가 “순창아~~~”하는 CF도 있었지만, 순창고추장은 원래부터 전주비빔밥, 평양냉면 정도의 브랜드 가치를 지녔다.
한식에서 장(醬)이란 맛의 근본이다. 손이 없는 날을 골라 장 담그는 날을 따로 받고, 장독에 금(禁)줄을 두르는 것은 그만큼 장이 우리 삶 속에서 중요한 물품이기 때문이다.

순창은 섬진강변 자전거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많은 라이더들이 찾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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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은 장류의 메카다. 순창고추장이 유명해진 것은 역사적으로 오래다.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순창에 들러 고추장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고초장(苦椒醬)’을 맛본 후 감탄하여 후일 진상까지 명했다고 한다. 고추가 전래되기 이전에도 후추나 산초 등 매운 신초(辛椒)를 이용해 고초장을 만들어 먹었다. 순창에서 장을 담근다는 것은 일상이다.
비결은 손맛과 정성 뿐 아니다. 순창은 장류가 발효하기 좋은 천혜조건을 갖췄다. 연평균 13.2도, 평균습도 72.8, 안개일수 77일 등 일조량과 기온 등 기후가 적합해 고초균과 황국균 등 발효 미생물이 생존하기 좋다고 한다.
밥상에서 고추장이 유용한 것은 이미 모두들 알고 있다. 밥맛 없을 때 한 숟가락 넣고 쓱쓱 비비면 입맛이 확 살아난다. 생오이를 찍어도 마른 멸치를 찍어도 맛이 좋다.
국내 고추장 산업의 메카, 순창 고추장민속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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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이 좋으니 덩달아 장아찌도 맛좋다. 밥도둑이 따로 없다. 순창은 전북의 가장 아랫쪽에 있다. 전라남북도의 음식문화가 융합돼 꽃을 피웠다. 순창고추장이란 톱스타가 있어 더욱 빛나는 무대를 밥상으로 차려낸다. 순대국밥집에도 돼지갈비집에도 한정식처럼 한상 가득 차려나온다.
정말 산(山)자처럼 삐죽 솟은 아미산 아래의 순창고추장민속마을에 가면 국내에서도 내로라하는 고추장 명인들이 모두 모여있다. 대대로 고추장을 지켜온 이어진 마을이다. 이곳 체험마을에선 고추장을 이용한 간단한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체험 교실도 있다. 한국 최고, 아니 세계 제일의 고추장을 체험할 수 있다.
산천도 붉게, 밥상도 붉게 익어간다. 가을의 순창은.
demory@sportsseoul.com
순창에는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길도 있다.
여행정보
●둘러볼만한 곳=섬진강변길은 자전거 타기도 좋다. 워낙 풍경이 좋아 곳곳에서 멈춰서게 된다. 향가터널은 폐선 철도의 터널을 자전거길로 바꿔놓았다. 그림이 그려진 터널을 지나면 눈부신 풍광의 섬진강이 나타난다.
향가터널은 멋진 자전거길로 변신했다. 터널을 통과하면 섬진강(적성강)이 나타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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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체를 닮은 울퉁불퉁한 바위 계곡이 있는 장군목 등 자전거길 주변엔 멋진 곳이 많다. 고추장 담그기, 농촌체험 등을 해볼 수 있는 체험관이 고추장 민속마을에 있다. 아미산 아래 깨끗하고 시설좋은 숙소도 있다. 체험만 할 수는 있지만 숙박 만 할 수는 없다. 장류체험관(063)650-5432
명가원은 대대로 순창고추장의 명맥을 지켜온 명인의 집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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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고추장마을에서 3대째 고추장을 담가온 집(동백고추장)에서 돼지갈비집 ‘명가원’을 냈다. 명가원은 ‘순창고추장 양념 돼지갈비’와 삼겹살 등 고기를 다양한 반찬과 함께 차려내는 집이다. 장아찌와 나물 어느 하나 손이 안갈 것이 없을 정도로 모두 맛이 좋다. 양념갈비를 구워 나물과 함께 쌈을 쌀 때 고추장을 넣으면 더 맛있다. 1인분 1만2000원(250g)(063)652-1667.
순창시장 내 순대국밥 골목이 있다. 순창시장 내 ‘2대째 순대’는 애기보와 암뽕, 선지 순대로 시원하게 끓여낸다. 뜨끈하고 칼칼한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맛이 좋다.(063)653-0465.
●여행상품=강천산과 내장산을 다녀오는 버스투어 상품을
우리테마투어(www.wrtour.com)가 출시했다. 명품으로 소문난 내장사 단풍과 강천산의 단풍 트레킹을 1박2일로 즐길 수 있다. 순창 강천사계곡부터 정읍 내장산 단풍길, 장성 백양사까지 남도 단풍명소를 모두 둘러본다. 이달 27일까지 매주 화, 금, 토, 일요일 서울을 출발한다. 가격 12만9000원. 또한 내장산 단풍나무길, 원적암, 백련암, 비자림 숲길 등 자연관찰로 코스의 단풍 등을 즐기고 돌아오는 당일 여행상품(3만2000원)도 판매한다.
(02)733-0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