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가지가 가리키는 곳이 봄이다.
봄날의 광양 여행
매화가 피었다. 이제 영하 10도로 떨어지더라도 또 누가 뭐래도 봄은 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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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바야흐로 봄이니 꽃 얘기를 해야겠다. 그중에서도 매화(梅花). 매실나무의 꽃으로 가장 이른 봄에 핀다. 그래서 ‘봄의 전령사’, ‘봄메신저’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하지만 원래는 봄보다는 꿋꿋한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꽃으로 인식되어 왔다. 엄한에도 향기로운 꽃을 틔우는 매화를 보고 그저 ‘곱다’가 아니라 ‘지조와 절개’를 떠올렸던 것이다.
군자로 모신 덕에 사군자(四君子), 거기다 연꽃을 더해 오우(五友),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벗이 되고, 대나무와 함께 이아(二雅)의 매력으로, 소나무와 대나무를 곁에 두고 삼청(三淸)의 호를 각각 얻었다.
매화는 서리와 눈 속에 고운 꽃잎을 피우고 짙은 향기를 만방에 퍼뜨린다. 다른 꽃보다 이르지만 굳세고 강인함 속에 부드러운 향을 가득담고 있다. 울퉁불퉁한 가지에는 굳은 기상이, 가녀린 곁가지엔 샛바람에 흔들리지않는 고고한 절개가 서려있다.
매화는 그 자체로 봄으로 불렸다.
일지춘, 암향, 화형, 화괴, 고우. 모두 매화를 부르던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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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은 매화를 가리켜 화형(花兄), 화괴(花魁), 일지춘(一枝春), 암향(暗香), 호문목(好文木), 고우(古友) 등으로 불렀다. 꽃 중에서 먼저 피었으니 꽃의 맏형이 되고, 우두머리 괴(魁) 역시 같은 이유로 붙였다. 일지춘은 가지 하나에 봄 자체를 뜻한다는 것으로 매화는 봄을 부르는 꽃이란 의미다. 문인이 사랑한 호문목, 오랜 친구처럼 반가운 꽃 고우다. 중국 두보가 안동의 퇴계도, 성호 이익까지 먹물 깨나 튄 수많은 선비들이라며 누구나 매화를 찬양했다. 그 얼마나 대단한 꽃이란 말인가.
지금 그 매화가 전남 광양땅에 한가득 피었다.
빛 광에 볕 양 광양 땅 청매실농원에 찬란한 봄이 깃들었다.
볕좋은 땅 광양에 봄이 왔다. 고운 매화가 한가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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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가까워진 봄
서울과 남도의 봄이 좀더 가까워졌다. 몇년 전과 달라진 것은 바로 KTX고속열차. 올해는 SRT(수서철도열차)까지 생겼다. 2시간 반이면 순천, 여기서 광양까지는 20~30분이다. 이것저것 볼 것없이 다압(광양시 다압면)이었다. 겨울의 허연색에 지쳤다. 색에 굶주렸던 나는 다압을 향해 달려갔다. 다압은 호남의 끝이다. 경남 하동군과 섬진강 다리 하나 사이로 맞붙은 광양 다압면은 매실나무가 산천을 뒤덮고 있다. 볕좋은 언덕은 물론이요, 푸른 섬진강변을 따라 키작은 매실나무가 줄을 이었다.
매(笞)도 그렇지만 매(梅)도 먼저 맞는게 무조건 낫다. 다압면 청매실농원. 봄을 수확하는 농원이다. 매년 이맘때면 옥색 고운 섬진강물을 바라보는 언덕이 죄다 매화꽃밭이다. 매화는 꽃잎을 모두 터뜨렸을 때도 곱지만 투박한 메마른 가지에 꽃반지가 하나 둘씩 맺혀가는 모습도 좋다. 선비들도 사군자도(四君子圖)를 그릴 때를 그런 모습을 주로 화폭에 담았다.
시골 아낙들이 묘목과 장아찌, 햇쑥, 나물을 좌판에 놓고 상춘객을 기다리는 오솔길을 따라 매실농원 나지막한 언덕을 오른다. 봄볕 한창이라 등이 따갑다. 좋은 길은 봄으로 들어가는 입춘길이다. 잿빛 도시에 너무도 지쳐버린 나는 샤프심처럼 가느다란 새 가지에 맺힌 햇볕만 보고도 가슴이 뛴다.
도르륵 도르륵 가지에 달린 새하얀 망울, 아직 마이크로 웨이브를 받지않은 단단하고 동그란 팝콘같은 그 망울이 아침 햇볕을 받고 살포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곧 터질 태세다.
화려한 꽃 그늘 아래 그저 앉아만 있어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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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좋은 일부는 이미 꽃을 틔워냈다. 구슬비 맺힌 싸리나무처럼 자그마한, 그러나 한없이 고혹적인 매화가 새파란 하늘을 보고 뻗어나온 가지마다 묻어있다. 멀쩡한 산책로를 놔두고 꽃나무 사이로 숨어들었다. 숲속에 가득한 매향(梅香)이 보일만큼 진하다. 단숨에 들이키기엔 도시에서 자라난 코가 벅차다.
끝도 없이 펼쳐진 장독대 사이로 새빨간 홍매가 피어났다. 불타는 장독대. 그 안에 무엇이 들었대도 좋지 않을 수가 없겠다.
멀리 굽이치는 섬진강이 옥빛이다. 너무 바쁜 세상에서 살다보니 봄 좋은 줄 오십줄 가까워서 처음 알았다. 왜 봄봄 하고 노래하는지 이제사 알겠다. 올봄은 충분히 즐겨야겠다. 망설이다보면 꽃이 진다. 봄꽃은 도둑처럼 슬쩍 다녀간다.
●둘러볼만한 곳=다압면 청매실농원은 매실명인 홍쌍리 여사가 반 백년 전부터 시아버지(율산 김오천옹)가 가꾼 밤나무 밭을 국내 최초의 매실 농원으로 조성한 이래, 수천그루의 매화숲이 조성되어 있는 곳. 섬진강변에 위치한 자릿터도 좋고 동선을 고려한 조경도 좋아 매년 봄의 시사회를 보러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매실청과 매실차 등 다양한 매실상품도 판매한다.
●여행상품=국내여행전문 우리테마투어는 이달 26일까지 매주 화, 금, 토, 일요일 당일로 광양 청매실농원 매화마을과 섬진강 화개장터, 구례의 지리산 산수유마을 등을 다녀오는 당일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가격 2만8900원.
매주 금, 토요일 출발해서 거제도의 해금강 외도와, 통영의 소매물도 미륵산케이블카 동피랑마을 등을 보고 돌아오는 1박2일 여행상품도 있다. 17만4000원.(02)733-0882